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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60주년 앞두고 보는 그 시절 서강 - 염영일(60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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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13 15:52 조회18,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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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노고단상(老姑斷想) 

 

오랜 준비 끝에 개교를 한 서강이 1960년 4월 18일 첫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다. 신촌로터리에서 버스를 내려 한적한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 대학 정문을 지났다. 드문드문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만한 경사를 올라 노고산을 뒤로한, 당대 유명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본관(행정본부)에 도착했을 때 학장 길로련 신부님이 입구에서 “하이, 영일”하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손을 잡아 주셨다. 걸어오면서 내내 생각 많던 머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인사였다. 길 학장님은 등교하는 학생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맞이해 주셨다. 내가 서강에서 여지까지 잊지 못하는 첫 추억이다.

 

학장님은 학장 사무실 벽에 신입생 166명의 명함판 사진을 붙여 두고 이름을 외우셨단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난 미국 신부님의 인상은 소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것으로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분이 학장님이라 생각하니 대학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첫해 개설된 학과는 6개 학과였고, 교수님은 미국 신부님과 한국 교수님이 거의 반반이었다. 마치 외국대학이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학장 신부님과 함께 서강으로 오신 데슬렙스 수사님은 대학 전반에 걸쳐 유지 및 보수에 전념하시며 학교를 매일 최상의 분위기로 만드셨다.

 

수업중 학생 모두에게 특이할 필수 과목은 영어였다. 담당교수는 헙스트, 도일, 미첼, 꼬마 데일리 신부님 등 예수회 회원들이었다. 다들 젊으셨기에 학생들과는 친형처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교실에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의 영어반은 도일 교수님이었는데 매번 수업시간 학생 이름을 부르고, 강의 전에 10분 정도 퀴즈를 봤다. 우리 모두는 서강고등학교라고 별명 지었다. 훗날 미국에서 학부 과목을 택했을 때 과목마다 퀴즈가 강의시간에 수시로 있고, 시험은 중간과 말기 시험이 있었다. 그때 서강의 영어교실 생각났다. 그리고 결석초과로 인한 과목낙제 제도가 있었기에 수업시간은 매일 참석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당시 신촌로터리에 있는 당구장을 동문들과 자주 이용하며 수업시간에 자주 결석해서 주의를 받기도 했다.

 

개학 다음날 영어 수업을 끝내고 버스로 광화문에 갔다. 어제부터 각 대학들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됐는데, 광화문 주변은 벌써부터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 학생들의 데모가 격렬했다. 경무대로 향하는 많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고 분위기가 험악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날 고등학교 동문 한 명이 새 학기의 기쁨을 가진 지 며칠 안돼서 총탄을 맞아 유명을 달리했음을 나중에 알았다. 미국으로 떠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도 있는데, 그날 데모대에 합류했다가 총상으로 심한 부상을 당했던 다른 고교 동문은, 그 후 유학 가서 나의 60년 서강 입학 동문과 결혼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4.19 학생혁명은 대한민국 초기 3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하고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 박사를 하야시키고,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 일가는 목숨을 끊었던 사건도 일으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5년 전인 1955년 4월 서강대학 설립 위원, 미국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장 레오 번즈 신부, 노기남 주교, 게페르트 신부들과 면담을 갖고 대학설립에 관심을 가졌던 대통령이었다.

 

첫해 대학생활은 학업은 엄했으나 바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학생들은 대학 홍보를 위해 학장님 외 여러 신부님들과 미국 대사관, 용산 미군기지 등을 방문하고, 판문점에도 함께 갔다. 가끔 단촐한 파티도 열렸는데, 어느 가을 저녁 무렵 본관 옥상에 모여 간단히 차려진 음식을 들면서 길로련 학장님의 아코디언 연주를 석양을 바라보며 들었던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우리 세대는 근대사에서 격변기에 대학을 다녔다. 1961년 5월 16일, 역사의 큰 변화를 몰고 온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그해 늦가을 군 입대를 결심했다. 군 복무 후 잠시 복학해서 유학시험을 치른 다음 1965년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서강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유학 시절에도 틈틈이 서강에서 만난 신부님들과 동문 가족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95년 10월, 나는 대학평가 위원장으로 30년 만에 서강대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총장님은 7~8대를 역임한 박홍 신부님이었다. 위원회 교수들은 아침 9시부터 각자 맡은 분야별로 평가했고, 오후 5시까지 진지하게 평가를 강행했다. 총평을 끝으로 임무를 완수했는데, 오늘의 서강을 알아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35년 만의 서강은 많이 변해있었는데, 노고산 일대에 많은 건물이 들어섰고 종합대학으로 발전해 있었다. 1960년도 1학년 때 바랐던 내실 있고 특성 있는 강한 대학의 이미지가 얼핏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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