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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삼(80 화학) 미술품 보존복원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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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02 14:30 조회20,1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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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을 치료하는 남다른 길

 

ART C&R 미술품 보존복원연구소 소장, 김주삼(80 화학) 동문과 평창동 소재 연구소에서 만났다. 김 동문은 화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대학에서 미술품 보존복원학을 공부한 뒤 귀국,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복원가로 14년 동안 재직하고 연구소를 설립해 활동 중인 우리나라의 대표적 미술품 복원가다. 인터뷰 도중에도 복원 의뢰 상담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학창 시절 미술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그림 그리는 취미가 남달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는지요?

 

취미로 하는 그림과 프로페셔널로 그림을 그리는 건 전혀 다른 일이죠. 프로페셔널이라는 건 그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취미로 그리는 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참 열심히 그리긴 했지만요. 지금도 그림을 그립니다. 제가 화학과를 다녔습니다만 이공계라는 곳이 공부하기 빡빡하거든요. 한 번 공부의 루틴을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죠. 그래서 전 거의 기적처럼 졸업했어요.(웃음) 제가 학교 다닐 땐 워낙 시국이 엄혹해서 휴교령도 잦았죠.

 

미술품 복원 분야라는 게 1980년대에 참으로 생소한 분야였을 텐데요.

 

당시엔 졸업하면 원하는 곳에 대체로 취직할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연히 미술 잡지에서 우리나라 작품을 일본까지 가서 복원해 왔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미술도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화학 지식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막연하게 프랑스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학 떠나기 전에 제가 지망하는 전공에 관한 현지 학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었어요. 불문과 강거배 선생님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화가 문범강(73 신방) 선배에게도 도움을 부탁드렸지만 제가 스스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가면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체류 허가를 얻으려면 일단 학교에 적을 두어야 했기에, 학부 전공을 살려 화학과에 지원했어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유학이었네요.

 

그렇죠. 제가 화학과로 지원한 대학 측에서 알려주더군요. 당신이 원하는 전공 과정은 파리 1대학에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미술품 복원에 관한 기술과학 석사를 주는 과정인데 2년 이상 대학 학력이 필요하고 과정 기간은 4년이었어요. 실기와 미술사, 그리고 과학을 모두 배우는 과정인데 경쟁률이 10대 1이 넘더라고요. 당시 프랑스에선 제법 인기 전공이었던 거죠. 나름 예전 참여했던 전시회 팸플릿을 비롯해서 일종의 포트폴리오도 제출하고 서인석 총장님, 이덕환 교수님, 한병삼(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선생님 추천서도 받았지만 합격하진 못했어요.

 

겨우 길을 찾았는데 합격 못했다니 실망이 컸을 텐데요.

 

워낙 무모한 첫 도전이어서 실망이 그렇게 크진 않았어요. 일단 화학과에 적을 두고 미술품 복원 전공과목을 청강했어요. 청강하고 싶다고 했더니 요청을 들어주더라고요. 그런데 화학 공부도 새롭게 하다 보니 한국에서 공부할 때와는 다르게 참 재밌더라고요.(웃음) 여하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음 해에 미술품 복원 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품 복원 실기도 힘들었지만 미술사 수업이 참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미술사 수업이 단순 암기가 결코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에 미술사 공부를 깊이 한 경우가 아니기에 어려움이 더 컸을 것도 같습니다.

 

기본 지식은 어느 정도 갖고 있었지만, 수업 방식이 작품 하나를 제시하고 그걸 분석하고 논하는 거예요. 일종의 인상 비평이나 감상 수준 가지고는 턱도 없죠. 구조적으로 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 분석이 타당성을 갖춰야 하는 건 물론이고 독창성도 갖춰야 했으니까요. 독창성이라고 해서 무작정 기발한 자기 생각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설득력이 탄탄해야 했죠.

 

공부할 때는 그 과정이 참 어려웠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도움이 됐어요. 사실 미술품 복원 전문가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알게 모르게 좀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냥 단순 기술자로 보는 거죠. 하지만 저는 미술사 지식과 소양을 철저히 갖췄기 때문에 처음부터 큐레이터들과 대등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엔 호암미술관에 들어가셨죠?

 

그렇습니다. 프랑스에서 과정을 마치기 전에 사실상 스카웃이 된 경우입니다. 호암미술관 그러니까 리움이 해외의 미술관련 전문 인력을 폭넓게 수소문하고 있던 때였어요. 당시 저는 박사과정에 들어가려고 준비과정을 수료 중이었는데 호암미술관에서 제안이 와서 고민했습니다. 결국 박사학위과정 준비를 그만두고 귀국하기로 했는데, 미술관을 사실상 처음 세팅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 필요한 주요 기자재와 설비를 마음껏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홍라희 관장님이 전폭적으로 통 크게 뒷받침해주셨거든요.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보람도 무척 컸겠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무엇보다도 처리하고 싶은 작품을 수장고에서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게 정말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미술 작품의 재료기법적 연구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였어요. 당시 리움에는 분석화학자도 한 분 있었는데 함께 재료 분석을 하면서 논문도 발표하고 그랬죠.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미술품 진위 여부를 판단할 때 전적으로 과학적인 방법만으로 가능하다는 오해예요. 무슨 CSI처럼 말이죠.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품의 어떤 아우라와 예술품의 물질성, 넓게 보면 예술과 과학의 관계인데 그게 과학 기법만으로 해결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을 복원 처리할 때는 느낌이나 생각, 자세가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하는 일을 의사가 하는 일에 견주고 싶어요. 예컨대 어떤 의사가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을 환자로 대하게 됐다고 해보죠.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어도 의사로서 마주하는 그 연예인은 어디까지나 환자 아닙니까? 물론 사람인지라 가슴이 좀 떨리거나 설렐 수도 있겠지만, 결국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환자들을 대할 때와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아주 좋은 작품, 제 맘에 드는 작품이 들어오면 곁에 좀 더 오래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합니다.(웃음) 좋은 작품을 마주한다는 기쁨, 보람이 아무래도 좀 더 크긴 크죠.

 

조심스런 질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실수할 때도 있습니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큰 실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복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작은 실수는 한 적이 있지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걸 이 기법으로 이렇게 하면 좀 위험해질 수 있다’라는 감이 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해질 것 같으면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갑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거죠. 한 가지 솔루션에 매몰돼버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근현대 미술품들이 작업하기 더 어려워요. 기법이나 재료가 다양하니까요.

 

더 많은 작품을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지요?

 

전혀 없어요. 저는 절대로 바쁘게 작업하지 않습니다. 성격도 서두르는 편이 아니지만 미술품 복원은 감정적, 지적인 자기 통제와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복원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충분히 생각하고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야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최적의 솔루션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 서두르면 반드시 무리수가 나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작업하는 게 재미가 없고 싫증나면 절대 못합니다. 시쳇말로 억지로는 못한다는 거죠. 더 많은 작품을 빨리 처리해서 돈 많이 벌자는 욕심을 지니면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연구소 홈페이지도 만들지 않고 간판도 달지 않고, 좀 더 널리 홍보하지 않는 걸 의아하게 여기기도 하는데, 지금 들어오는 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집중할 수 있는 만큼만,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두른다고 더 잘 될 일도 아니고, 또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일이예요.

 

서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한 학년이 600여 명 정도 됐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학과 구분이 무색해져요. 그냥 전교생이 같은 한 학과 친구 같은 느낌인 거죠. 실제로 2학년 정도 마치고 나면 학과 구분 없이 서로 낯이 익게 되요. 파리 유학 시절에도 동문 친구, 선후배들과 참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제가 요리에 좀 취미가 있어서 된장찌개, 불고기, 돼지고기 두루치기, 만두 같은걸 만들어 동문 행사나 생일에 대접하기도 하고 요리법도 전수했죠. 그래서 서강이라고 하면 ‘친구’, ‘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강 가족 여러분 모두 하시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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