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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박고영 예수회 신부·아퀴나스 합창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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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12-18 10:26 조회22,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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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박고영 예수회 신부·아퀴나스 합창단 지휘자

“하늘의 섭리를 따르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지요”


샛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캠퍼스. 계절이 깊어갈수록 제 색깔을 드러내는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기만 하다. 지난 11월 8일 모교 사제관에서 만난 박고영(89) 신부는 꼭 가을의 모습을 닮았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이에게서 느껴지는 기품과 아우라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나이듦을 긍정하는 노(老) 신부는 온화한 미소로‘인생의 후배’를 감화시켰다.

“하늘의 섭리를 따르는 건 기쁜 일이지. 체력이 안 돼서 못 뛰면 살살 걸으면되고…. 나이가 드는 걸 불평하면 안 돼요. 죽고 난 후에는 또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걸.”

구순을 앞둔 나이가 결코 믿기지 않는 박 신부는 아퀴나스 합창단의 지휘자다. 그는 지난 11월 10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창단 40주년 기념음악회를 열고 식지 않은 음악적 열정을 드러냈다. 

박 신부의 주도 하에 아퀴나스 합창단이 결성된 것은 1967년. 모교 동문과 이화여대 음대 학생 13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로 출발했다. 한때 단원이 120명을 넘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제 남은 단원은 38명. 모두 성악 전공자(그래서 이제 모교 동문은 이 합창단에 없다)로 바흐의 ‘마테수난곡’처럼 어려운 성가곡을 거뜬히 소화한다.

“합창단은 1년에 두 번씩 정기공연을 해요. 이를 대비해 1주일에 한번씩 연습을 하지. 내게 음악은 ‘하느님에 대한 찬미’예요. 그래서 더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지.”

60~80년대 학번 동문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박 신부는 서강 역사의 산 증인이다. 모교가 개교한 1960년 9월부터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합류했고, 지금까지 캠퍼스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안익태 선생의 교가 원본 친필 악보와 가사 친필 원고를 최근까지 보관해온 것도 바로 박 신부다. ‘안익태 선생과의 추억’을 묻자 그는 상기된 얼굴로 당시를 떠올렸다.

“안 선생께 ‘지휘 잘 한다’고 칭찬 받은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작곡가의 의도를 잘 살렸거든. 참, 요즘 교가를 들으면 하나 지적할 게 있어요. ‘앞으로 간다’라는 가사에서 ‘다’ 부분에 페르마타가 있으니 길게 늘여줘야 하는데 그걸 빼먹더라고. 교가가 원곡대로 불리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하나의 음표나 기호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건 박 신부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요즘도 그는 틈날 때 마다 컴퓨터로 작곡을 하거나 라틴어로 쓰인 다성악 악보를 번역한다. 화성학, 대위법, 작곡법 등을 섭렵한 박 신부는 ‘미사음악의 대부’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수많은 다성악들이 대개 라틴말로 쓰였는데, 요즘 점차 잊혀져가고 있어요. 어린 시절 라틴어를 배웠던 내가 그 악보들을 번역하지 않으면,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더라고. 죽기 전까지 좀 더 많은 악보를 번역하는 것이 내 목표예요.”

박 신부는 사제관에서 가장 ‘어른’이다. 현재 20세 정도 어린 신부들과 사제관에 머무르고 있는데, 건강은 그들 이상으로 좋은 편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학교에서 테니스를 치는 것은 기본. 측근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을 중시하는 박 신부가 “춥다”고 말해야 사제관의 난방이 시작될 정도라고 한다.

트레이드마크인 베레모를 쓴 채 교정을 거니는 박 신부의 모습은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청력도 좋은 편이라 대화 내내 다른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처럼 목청을 높일 필요도 없었다. 아름답게 나이드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대체 피부 관리를 받으시는 거냐. 건강 비결을 알려 달라”는 까마득한 후배의 채근에 박 신부는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건강관리랄 게 따로 있나. 잘 먹고 잘자고 기쁘게 살면 되는 거지. 병은 약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치유되는 거예요. 나는 치아를 제외하곤 아직 모두 건강한 편이지. 시원치 않은 치아 때문에 고기는 잘 먹지 않고, 소식하고있어요.(웃음)”

“드라마 태왕사신기, 왕과 나, 대조영을 즐겨 본다”는 박 신부는 요즘 젊은이들 못지않은 트렌디한 감각까지 갖췄다. 내년엔 다시 신학대학원 강의를 시작할 것 같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40년 넘게 캠퍼스에 머물며 바라본 서강대 학생들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박 신부는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요즘 젊은 학생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60~70년대 학생들은 참 진지하고 학구적이었는데, 요즘 학생들을 보면 편하고 실용적인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의 열정이 줄어드는 게 가장 안타깝지. ‘위대한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이 더 많이 나오면 우리나라도 더 발전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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