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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편지: 임향화 동문이 이상한(71 수학) 동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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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3-11-18 09:11 조회13,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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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서울에서 우연히 통화한 동생 영화씨에게서 상한씨와 부인, 아이들 모두 잘 지내신다는 소식 듣고 마음이 참 좋았어요. 롱아일랜드에서 맨하탄으로 이사한 후, 몇 년 동안 서강옛집을 받지 못하다가 동문회로부터 연락받고 놀랐는데 상한씨 역시 이 편지가 아주 뜻밖이겠지요. 서강옛집에 실릴 편지를 쓰자니, 마음은 벌써 달음박질치는군요. 명암이 뚜렷한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FA와 연극, 두 단어로 정리되는 서강, 그 시절로… 1학년 여름방학 즈음, 학사경고 받은 신입생의 학부형 동반모임이 끝나고 면목 없이 교문으로 향하던 내게 "우리 딸이 홍일점이라서 영광으로 생각한다" 딱, 한 말씀 하시던 어머니… 3년 전 돌아가신 당신을 그릴 때 마다 꼭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FA를 남달리 가까이 하고보니 9학기 째에는 24학점을 꽉꽉 눌러 채우고야 가까스로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었는지, 심지어는 요즘도, 몸은 명동에서 신이 나는데 강의실에서는 내 이름이 계속 불려져서 안절부절, 가위눌리는 꿈을 꾸었을 정도였다면 믿으실 지… 하지만, 고교시절 뮤지컬 'Oliver'를 보고 반해서 지원한 서강대학인 만큼 연극반원이 되어서 많은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행복한 부분이지요. 영어 뮤지컬, 정기공연, 축제, 신입생 환영공연 등 강의실 보다는 텅 비어 어둡고 습기로 곰팡내 끼치던 대학극장이 내겐 익숙하고 정겨운 공간이었지요. 2학년 봄 'West Side Story'의 갱 단원 'Anybodys' 역으로 눈에 띄어 재학 중에 명동 국립극장, 극단가교, 자유주장 등 기성 극단에서 주인공을 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오태석 선생과 만나 '춘풍의 처'의 처가 되어 수많은 서울 공연도 모자라 남사당처럼 전국을 누비다시피 했었죠. 이상한, 감성율 두 사람도 1학년 봄 'The Man of La Mancha'의 Back staff를 하면서 알게 되고 또 가까워졌죠. 77년 말 드라마센터에서 'LUV' 공연을 끝내자마자 올린 결혼식이 너무 급작스러워 아무에게도 연락을 못했는데...... 

 

그런데 뜬금없이 웬 식당이냐고요?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이들 뒤를 따라 95년 뉴욕으로 와서 자리를 잡아갈 무렵, 맨하탄에서도 멋쟁이 동네라는 Tribeca에 Korean-French Fusion Restaurant을 꼭 해보고 싶다는 요리사 부부의 말을 그대로 믿고 투자를 했지요. 심한 마음고생 끝에 많은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신창이가 된 빈 공간만 덜렁 남겨졌지요. 그만 포기하라는 서울의 가족들이나 주위의 모든 만류에 고민과 갈등도 많았지만, 1년 동안 책으로 열 권 정도(?)의 고생 끝에 'KORI'라는 이름의 한국식당을 오픈하고 사장 겸 주방장이 되었지요. 그 시절 일화 하나, 서강대 후배라는 동문이 식당에 전화를 하고 들르기도 하였다는데 어긋나기 여러 차례, 한번은 직접 통화가 되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나가니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 하며 "임향화씨냐?"고 자꾸 물어봤지요. 기름과 땀으로 번질거리는 맨 얼굴,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 후줄근한 주방 유니폼, 마구 살이 쪄서 뚱뚱해진 몸매-잠깐 주방에서 볼 일 보고 나오니 사라져 버리고 없더군요. 충격이 컸었나 봐요. 이 에피소드에 친구들이 붙인 제목은 '무기가 흉기된 이야기'... 

 

상한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수다가 너무 길어졌군요. 햇빛 청명하고 바람이 소슬한 가을날이었지요. 3학년 때인가? 남주 형의 정갈한 자취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그만, 어디선가 인간에게서 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 아닙니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슬금슬금 마당으로 나가 발을 씻고 들어오는데 냄새는 계속 나고, 나는 사람들이 무안해 할까봐 아무 냄새도 못 맡은 척 태연히 앉아 있었지만, 코가 흔들거리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속도 메스꺼워서 라면을 억지로 먹는 시늉만 했지요. 모두들 어색한 분위기에서 헤어져 집에 돌아왔는데 아니, 내 방까지 그 냄새가 따라 오는 것 아닙니까? 참 지독한 냄새도 다 있구나 하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상한씨도 기억하실 거예요. 그림자 같이 나와 붙어 다니던 그 친구(서울대, 얼굴 까무잡잡), 미팅이나 데이트가 있으면 가끔 내 옷과 바꿔 입고 가곤 했지요. 그 날도 내 구두를 신고 자기 구두는 벗어놓고 갔길래, 내가 그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갔다는 것 아닙니까? 그땐 정말 죽고 싶었지요. 이 말을 제발 그대로 믿어주세요. 지금 그 라면 멤버들 다시 한번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울 우리 집에 모여, 이번에는 라면 말고, 뉴욕에서 날아 온 주방장의 스페셜 메뉴로! 상한씨와 가족들 모두 건강하세요. 

 

Peace to You! 뉴욕에서 임향화.

 

이 글을 쓴 임향화(71 국문) 동문은 국립극장, 극단가교, 자유주장 등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미국뉴욕에서 '고리'라는 한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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