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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베스트 드레서' 제갈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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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3-08-20 10:08 조회13,0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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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을 담지 않은 옷은 '영혼이 없는 육신'

 

삼국지'에는 화려한 옷에 대한 멋진 묘사들이 많이 나온다. 여포는 유비삼형제와 처음 싸우는 장면에서 자줏빛 금관을 쓰고 서천산 붉은 비단에 꽃을 수놓은 전투복을 입고 나와 대적한다. 마초는 조조를 쫓을 때 은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서 무예를 뽐내며, 관우는 비단 수염주머니를 걸치고 다닌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삼국의 영웅들은 무예와 지혜를 겨룰 뿐 아니라, 패션을 겨루고 있다. 전장(戰場)은 마치 패션쇼처럼 화려하다. 

 

그런데 패션에 관한 위대한 책인 '삼국지'에서 가장 옷 잘 입는 사람은 누굴까? 촉나라가 크게 승리할 때마다 느긋이 나타나는 한 인물에 대한 반복되는 이런 묘사가 있다. "그때 장수들이 사륜거를 호위해 나오는데, 그 위엔 학창의 차림에 윤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든 채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아있었다." 이 단출한 옷차림의 주인공은 바로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결코 화려한 옷을 입지도 않았고, 입을 수도 없었다. 그가 오장원에서 죽을 때 황제에게 올린 표문을 보면, 재산으로 '비단 한 조각 모은 게 없다' 고 나와있다. 그런데 '비단 한 조각' 단장하지 못한, 삼국을 통틀어 가장 별 볼일 없는 옷차림을 한 이 단벌신사가 바로 '삼국지'의 베스트 드레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학창의와 윤건이 그 소박함과 단순함으로 인하여,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그 어떤 옷보다도 잘 드러내주고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옷은 그것을 입는 자의 '정신'을 올곧게 드러내 줄 때 자신의 사명을 가장 멋지게 수행한 것이다. 아무리 고가품일지라도, 옷이 그것을 입는 자와 입어야할 장소를 떠나 저 혼자 뽐내고 잘난 척할 때, 옷은 불행하게도 천박함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요즘도 모교에 오면 종종 튀는 옷차림들이 눈에 띈다. 참 아름다운 옷들이다. 좋은 재질, 멋진 디자인, 고급상표. 아, 그러나 결혼식이나 야외 파티에 등장했으면 빛났을 저 '예복'이 왜 불행하게도 학교 주변에서 혹은 강의실 안에서 썩고 있는가! 모든 사물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옷들만큼 눈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없으리라. 

 

종종 장소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인격과 마음을 닦아서 자신을 빛내기보다는 멋진 옷을 통해 스스로를 돋보이도록 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인격이 담겨져 있지 않은 옷은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정신적 가치에 자신 없는 사람들만이 시도 때도 없이 화려한 옷과 화장의 가면을 쓰고자 한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아마도 이런 사람들의 종말을 경고하는 예언적인 작품일 것이다.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 보다 옷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추구하는 자는 바로, 어떤 옷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벌거벗은 저 볼품없는 실체를 사람들의 비웃는 눈앞에서 들켜버리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옷을 불행하게 하지 말라. 주인을 못만난 명검이 밤새 울 듯, 자기가 빛내줄 훌륭한 인격을 만나지 못한 옷도 밤새 옷 장 속에서 흐느낀다.

 

장유경(90 철학)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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